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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비하인드스토리, 오물 범벅 메르디스호 

 

과연 "국제시장" 영화의 주인공 14,000 여명은?

 

 

▲흥남부두로 몰려든는 피난민 행렬

 

 

예정대로 부산항에 도착 했을까? 그리고 그 많은 피난민들은 거기서  내렸을까? 그렇지 않다. 

예정대로 크리스마스 이브인 1950년 12월 24일 부산항에 입항은 한다. 

 

그러나 부산 당국은 그들의 양륙을 거부한다.

그 이유는 이미 부산에는 100만의 피난민이 들끓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기에 거제도로 뱃머리

를 돌려야 했다.거제도는 훗날 포로 수용소가 지어진 섬이다.

 

그 섬에 무슨 부두 시설이 있었겠나?

하는 수 없이 LST 두척을 동원하여 거제도에 전원을 6 시간만에 풀어 놓는다. 

당시 LST 대당 승선 인원은 8,500 명이었다.

 

 그러니까 그 모선이었던 메레디쓰 빅토리아호에 실려온 그 피난민들은

거의 만 5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내려온 것이다.

 

 

 

▲피난민을 태우기 위해 군수물자를 폭파하는 메르디쓰호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빼곡히 서서 내려오니 대소변을 그저 서서 보아야 했다.

그 불편과 고통이 오죽했으랴!! 게다가 그 악취가 또 오죽했으랴 !!!

그래도 참고 질서를 지킨 조선민족에 대하여 그 점에서 선원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전해진다. 인류애적 인간의 승리이다

메레디쓰호는 선원들이 피난민 하선후 감히 선창에 접근할 수 없도록 그 악취가 극에 달했다.

그래서 일본 규슈의 사세보 항으로 돌아가 대대적인 세척을 해보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가 워싱톤주 시에틀항에 입항해서 다시 세척을 했지만 완전한

냄세 제거는 시간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포장을 해서 묶어두어야 했다.

 

 

▲피난민들의 임시거주처

 

 

거제도 도착한 인원은 정확히 14,006명이다.

5명은 그 항해기간 동안 새로 태어난 아기들이었고

리고  북괴 첩자 1명이 한국군 헌병 복장을 하고 스며든다.

 

 

선박당국은 분명 17명의 한국 헌병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반드시 18명의 식사가 태워

가는 것을  수상히 여겨 조사한 결과 그 첩자를 발견하고 쇠사슬로 묶어 거제도 까지

호송해 갔다.

 

그 첫번째 아기의 이름은 라뤼 선장이 김치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선박 사무장은 본토로 돌아가 예정대로 코넬대학 법과에 진학했다.

그 북새통에 폭동 조짐이 보여 선원들은 매우 긴장한다.

 

더욱 절박했던 사건은 피난민중의 일부는 모퉁이에 싸아놓은 항공류 드럼캔 위에서

취사를 하려다가 제지를 당한다.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그 위험을 설명하는데 매우 긴 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방치되었더라면 14,000여명의 인명은 화상을 당하고 바닷속의 제물로

사라져갔을 것이다.

 

 

 

여기까지 스토리을 알고 그 영화 국제시장을  보다면 더 흥미로 울 것이다.

 

14,000여명이 만 5일 동안 배설한 대소변과 그 악취? 생각만 해도 끔직한 사건이었다.

 

당시 초기 인원파악은 성인들만 파악되어 10,000명 정도인 줄 알았는데

엎고 끌고 무등태워 들어온 아동수가 4,000여명을 헤아린 것이다.

 

 훗날 미 선주협회에  이 승선인원이 보고 되자 타이핑 미스로 보고 "0"  하나를

지워버린다.

 

 그래서 수정을 요구하자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2차 대전중에 임대한 영국의 퀸 메리호는 5만톤을 넘는 여객선으로

그 승선 병력 인원이 고작 10,000명이었다.

 

그러니 15,000톤급 배에 14,000명이 탓으니 누가 믿을 것인가?

흥남부두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떠난 이 배에 그들이 타지 못했다면

그들은 100% 반동으로 몰려 처형당했음은 불보듯이 뻔했다.

 

 

 

 

(PS)

 

그 피난민 흥남 철수를 승낙한 10군단 사령관 아몬드는 버지니아주 페이지 카운티 루레이

출신이다. 루레이 하면 그 유명한 돌 고드름 관관광지인  루레이 동굴이 있는 곳이다.

 

이 사람은 2 차대전중 유럽에서 순수 흑인으로만  구성된 미보병 92 사단을 지휘했지만 성적

이 불량했다. 그는 그 이유를 흑인들의 전투능력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고 흑인 군인 발탁은

안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웨스트 포인트를 나온 장군이 아니고 버어지니아 군사학교를 나온 사람이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죠지 마샬 원가 바로 선배 동문으로 그 빽이 아주 든든했다.

 

 

 매까사는 죠지 마샬만이 당시 미국군 서열상  자신의 위에 위치한 사람으로 따라서 아몬드

를 한국전에서 크게 배려를 하여 10군단이란는 사실상 독립 군단을 맡겼다가 그 혹심한

전술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래도 아몬드는 견책은 커녕 중장으로 진급하지만 매까사는 허물을 뒤집어 쓰고 직위 해제

되고 만다. 거기에 동의한 인물들이 바로 조지마샬과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오마 부래드리

대장이었다.

매까사는 중공군 개입에 대응하여 대만군의 동원,그리고 원자탄 사용을 언론에 일방적으로

표명하는등 국군 통수권자의 권한을 유린한 것이다.

아몬드는 장가를 잘 갔다. 아내로 남부 노예 재벌인 갤러웨이가의 딸을 맞아들인 것이다.

갤러웨는 한국인들이 사족을 못쓰는 골프채의 상표명이기도 하다.

 

 루레이 동굴 관광을 하려고 동굴에 들어가면 그 맨 끝은 넓은 광장이 나오고 거기에는 돌 고

드름에 햄머를 달아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내게 만들었으며 "Shenandoah 라는 명곡이 연주

된다. 아주 감동적인 관광 순간이다. 한국전 역사를 알고 보면 말이다.

 

 물론 그 동굴 속에는 한국전에서 산화해간 전몰 장병들의 기념비도 있고 그에 앞서서

이 루레이 마을의 청년들이 미군에 입대하여 같은 부대원으로 놀만디 상륙 작전에서

거의 전멸을 당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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