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에게 극심한 산통을 안겨주며 힘겹게 세상에 나와
웃음보다 울음을 먼저 터트려 고고성을 질러댔다.
울음의 의미가...
세상이 내게 가져다 줄 시련을 지레 예감했던 걸까?
새빨간 내몸에 처음으로 배냇저고리가 입혀지고,
어설픈 몸짓으로 걸음마를 떼어놓던 그 때가
이 세상 태어나 처음 옷을 걸친 나의 어린시절이었다.
백지처럼 하얗던 내 머리속에 세상에 대항해 가야 할
한점 두점의 강요된 지혜를 채집하며
자의보다는 외적 타성에 의해 헤매야 했던 그때가
교복을 입은채 순진무구했던 나의 학창시절이었다
맞딱뜨린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오가며,
만족보다 좌절을 맛보면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해
두손 입에 대고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댔던 그때가
미제 중고 청바지를 줄여 입고 방황하던 나의 청년시절이었다.
세상 한가운데 던져져 오감으로 옥죄오던 치열한 경쟁,
남을 짓밟고야 오를 수 있었던 비열한 존재감의 사다리.
자식,부모 사이에 끼어 무수한 날을 홀로 버티던 그때가
반쯤 걷어 올린 Y셔츠 소매에 풀어헤친 넥타이..
그럴싸한 정장을 차려입은 나의 젊은 시절이었다.
갈 사람은 가고,
자랄 사람은 다 자라 둥지를 떠나고, 덩그라니 남겨진 자리.
가을날 빛바랜 나무끝에 매달려 바람에 팔랑대는 단풍잎처럼
나뭇잎은 나뭇잎이로되 핏기없이 깡마르고 푸석한 모습에서
파란만장의 시간이 흘러, 낡은 영사기를 거꾸로 돌리 듯,
뒤안길을 반추하며 소파에 기대앉아 회상하는 지금이
연륜의 시계를 역회전 하고픈 나의 자학적 자화상이지 싶다.
희노애락의 숱한 깨달음속에 너덜너덜 헤진 누더기..
덕분에 삶의 지혜와 여유로움이 선물처럼 주어졌으니
이제 그 누더기의 진부한 허물을 벗고 새 옷을 갈아 입으리.
세간이 말하는 부정적 단어, 그 "탈피"란걸 부득부득 생각하며,
지지고 볶던 영어(囹圄)의 세계에서 드디어 자유로워지는 날.
수고하고 대견한 내 영혼을 위해 기탄없이 칭찬하리라.
올때, 배냇저고리 한벌... 갈때, 수의 한벌...
벌거벗은 몸땡이에 나 아닌 누군가가 입혀주는 두벌의 옷,
한벌은 가신 분이 입혀주었고.. 한벌은 남겨진 자가 입혀주리라.
어느 날, 우주의 작고 푸른공 "지구", 그 작은 공을 내려다 보며
거기서 평생을 울고 웃던 벗들을 향해 즐거웠다 손짓하리라.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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