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깊은 곳에 토굴을 짓고 혼자 수행 전진해 온 노 스님이
먼 마을로 겨울양식을 구하러 탁발을 나섰다.
날이 저물어 무명 촌로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노승은 주인 부자지간의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이른다.
“윗마을에 사는 박 첨지가 어젯밤에 죽었다는데 지옥에 갔는지 천당으로 갔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예"
노 스님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자기는 일생을 참선 수행을 하며 살아왔지만 죽은 사람이 지옥을 가는지 극락으로 가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인데 한 촌부가 어떻게 저런 거침없는 말을 하는지 놀랍기만 했다.
그러한데 얼마 후, 그 아들이 돌아와 자기 아버지께 "천당으로 갔습니다"하고 아뢰니
"그랬을 거야" 하는 것이다.
노 스님은 더욱 기가 막혔다.
이 노인과 저 젊은이가 죽은 자가 극락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궁금증 속에 날이 밝았다.
이번에는 주인 노인이 또 아들을 불러
"이웃마을 김진사도 죽었다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잠시 후, 이웃마을을 다녀온 아들이 아버지께
"김진사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아뢰었고
"그럼 그렇지."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한 노 스님은 주인에게 물어보게 된다.
"노 처사님! 죽은 사람이 지옥을 가는지 극락을 가는지 어떻게 알 수가 있으시오?"
주인은 미소 지으며
"죽은 사람 마을에 가면 금방 알 수가 있지요."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윗마을 박 첨지는 살아 생전에 심성이 후덕하고 양심이 고우며 동리의 궂은 일은 도맡아 했으니,
온 동리 사람들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으니 필경, 극락에 갔을 것이며…
이웃마을 김 진사는 평소 얼마나 인정머리 없이 모질고 독하였던지 김 진사가 죽자
동리사람들이 모여 수군대기를 '그 많은 재산 두고 아까워 어찌 죽었을고? 귀신은 지금까지 뭘 먹고 살았노,
저승사자와 어긋 만나 오래도 살았지' 이렇게 악담을 퍼부으니 지옥밖에 더 갈 데가 어디 있겠소?"
결코 웃고 넘길 이야기는 아니다.
'민심이 천심' 이라 했듯이 민심이 곧 하늘의 심판이요, 염라대왕의 판결문이며 업경대(業鏡臺)다.
그래서 옛 선인들께서
"이름 석자를 남기고자 딱딱한 돌을 파지 마라, 오가는 길손들의 입이 곧, 비문이니라." 한 것도
같은 뜻이리라.
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거나 절을 하기 전에 내 마음부터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게 먼저다.
마음 거울에 먼지가 끼었으면 맑게 닦아내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복은 달라고 해서 주는 게 아니다.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음그릇의 크기에 따라 받게 된다.
그릇이 크면 많이 담겨지고 작으면 적게 담겨진다.
너무 많다고 적게 달라느니, 적다고 많이 달라고 해도 하늘의 법도는 변함이 없는 그대로다.
복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말고 남에게 베푸는 후박(厚朴)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복은 받는 게 아니고 서로에게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박(厚朴)한 향기는 천 리를 넘어 만 리를 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