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어가는 내 꼴을 보면서 - 김동길
고려 말의 선비 이색(李穡)이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흰 눈이 아직도 다 녹지 않고
남아있는 골짜기에 덮인 구름이 험악해 보인다.
그리운 매화는 지금 어디 쯤 피어 있는 것일까.
석양에 홀로 서 있는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옳은가.
이색은 1328년에 태어나 139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고려조가 무너질 때 그는 이미 70을 바라보는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한 시대의 뛰어난 선비였던 목은(牧隱)은
봄을 노래하는 매화를 그리며 탄식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80을 넘어 90을 바라봅니다.
‘건강 백세’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다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건강하게 100세를 살겠다는 것은 허망한 꿈입니다.
‘노익장(老益壯)’을 말하는 이들은
노년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마다 회갑을 넘기기가 어렵던 시대에
‘장수’는 바람직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평균 수명이 80을 넘게 되었다는 오늘,
장수’의 비결을 운운하는 것은 매우 죄스러운 일입니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이 바람직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오늘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보면서
‘자기들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오늘의 노인들도 한 때는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땅바닥에 앉았다간 일어나기가 어렵고,
조심하지 않고는 계단을 무사히 오르내리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노인이라고 하는데, 사는 일이 힘에 겹다는 사실을 날마다 느끼면서
오늘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