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00종과 4천439종의 씨앗을 모아 종자은행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사람도 꼭 같은 이치다. 자기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다. 그런데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되고 만다.
주변을 살펴보면 타고난 아름다운 재능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혀 버려지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
영국 경제학자 찰스 핸디는 그의 책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에서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29명을 분석하고 그 결론으로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일등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남을 따라하지 말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 자신을 믿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아무도 가지 않은 자기만의 길을 가라”
즉 ‘자기다움’에 대한 인식 문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창조할 수도 없다. 설계하지 않은 집은 지을 수도 없다. 자신이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되는 인생은 아무리 잘 살아도 사실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존재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이름 없는 들풀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Dirty is out of the place”(더러움이란 자기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연못 속에서 커다란 고기가 헤엄칠 때에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고기가 우리 침대 위에 누워 있다면 우리는 더럽다고 말한다.
아름답던 물고기가 혐오스러워지는 것은 그 물고기 본질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논밭에서는 꼭 필요한 흙이 방바닥에서는 닦아내야 할 더러운 것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임의대로 버리고 떠날 수 없다.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견고함과 인내와 피나는 노력을 요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은 제자리를 지키며 그 곳에서 충성스럽게 맡겨진 역할을 해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