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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세상과 함께 늙어가는 일이란 내가 늙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동갑내기의 아내가 늙어가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아름다웠던 아내의 모습도 벌써 황혼녘에 접어들고, 이제는 어버이날에 두 아이들이 고맙다고 선물을 내밀면 너무나 좋아서 틀니가 빠질 정도로 웃어대는 늙은이가 되어간다. 지난 세월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인생이란 고통의 실로 짜는 피륙과 같은 것'이라는 브레이크가 쓴 시구처럼, 인생이란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짜이는, 그 안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어우러져 가로세로로 직조되는 한 벌의 옷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면서 삶이란 옷 한 벌을 받았고 그 옷에 새겨진 무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이 땅에 머물다 간다. 우리 삶에 입혀진 무늬가 서서히 먼지로 사라져 갈 때까지. 삶의 무늬들이 다 닳아 없어져 반들반들한 땅이 될 때까지. 젊은 시절 그토록 고왔던 아내가 늙어가는 것을 보는 일이란 내게 주어진 삶의 무늬가 서서히 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일을 보는 것과도 같다. 함께 늙어가면서 우리는 같은 무늬로 동화되어 서서히 세상의 공기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비로소 한 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