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작품세계
Jean Franois Millet, 1814 ~ 1875
밀레는 노르망디 작은 마을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어렸을 때 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미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어 틈틈이 그림공부 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워 갔다.1838년, 파리국립 미술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교과과정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들을 모사하면서 홀로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아는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팔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1848년,
살롱전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 이로 인해 국가의 공식적인 작품 주문까지
받게 되어 조금씩 생활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파리에 콜레라가 돌자 이를
피할 겸 가족들과 함께 파리에서 그리 멀지않은 조용한 시골 마을인 바르비종으로 이주,
그곳에서 아름다운 농촌 풍경과 농민들의 성실하고 소박한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이런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 더욱 진실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자연주의 화가로서 <이삭줍기>, <만종>등과 같은 유명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건초를 묶는 사람들
가을이 익어가는 시골집
가을바다 위의 어부들
어린 양치기 소녀
키질하는 농부
건초더미
칠면조가 있는 가을풍경
나무 아래의 소녀
가을 석양
그레빌 언덕의 집
모이 주는 아낙네
가을 폭풍
이삭줍기 (데생)
양치는 소녀와 양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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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k to
Work (Le Depart pour le Travail) 1851
Oil on canvas 55.5 x 46 cm (21 7/8 x 18 1/8 in.) 그들은 또한 자연주의적인 양식을
지향하였으며,
자연에 귀의하여 자연과의 내밀한 교감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자연에 대한 애정은 개인의 관심에 따라다른 화풍을 띠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 같은 작가는 태양광선과 날씨에 따라미묘하게
변화하는
친근한 풍경을 포착했고,
밀레는 자연과 어우러져 일상적인 노동에 전념하는농부나 목자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또 바르비종파에서 비롯된 근대 풍경화는 고전적이고낭만적인 자연관을 거부하고
자연을 직접 관찰하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하였습니다.
The
Angelus 1857-59 Oil on canvas 21
3/4 x 26 in. (55.5 x 66 cm) Musee d'Orsay,
Paris 이에 반해 자연주의 화가들의 (Barbizon파)
풍경은
숲
속의 빈터나 수풀 언저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며 너무나 가기 쉽고
갖기 쉽기 때문에 현대의 도시인에게는
하나의 경고와 책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잘 것 없는 주제의 선택에서 우리는 쿠르베, 밀레, 도미에 등의 인물 선택에서 본 것과 같은 민주적 정신의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연적 사실주의는 얼마 후 낭만주의의 풍경화 못지않게인습적이 되어 버리며. 그것은
인상주의의 대두와 필연적 관련성을 가지게 됩니다
Shepherdess with Her Flock 1864 Oil on canvas
32 x 39 3/4 in. (81 x 101
cm) Musee d'Orsay, Paris 밀레는 이 자연적 사실주의의 중심에 있던 화가입니다. 그는 노르망디 지방 그레빌 출생하여. 1833∼36년에 셰르부르에서 그림공부를 하다가 37년 장학금을 얻어 파리로 진출하여P.들라로슈의 제자가 되었으며,.
루브르미술관에서 푸생, 르냉, 샤르댕 등의 영향을 받았으나,
도미에의 작품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 . 1848년 살롱에 출품한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루브르미술관
소장)은 그 후 농민생활을 그리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Shepherdess with Her Flock 1864 Oil on canvas
32 x 39 3/4 in. (81 x 101
cm) Musee d'Orsay, Paris 그는 1849년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대지와 맺어져 있는 농민생활의 모습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그렸습니다.
이 시절에 T.루소, C.코로 등과 친교를 맺고, 빈곤과 싸우면서 진지한 태도로
농민생활에서 취재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여 독특한 시적(詩的)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바르비종파(派)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과는 달리 풍경보다는 오히려 농민생활을 더 많이 그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종교적 정감이 감도는서정성으로 친애감을 자아내고
오늘날까지 유럽 회화사상 유명한 화가 중한 사람으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만년에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 화가로서의 영광을 누렸으며, 1868년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주요작품 중 "씨뿌리는 사람"(1850) "이삭줍기"(1857)
"걸음마"(1858) "만종"(1859) 등은 발표 당시부터 주목을
끌었으며, 만년의 가작 "봄"에는 빛의 효과에 있어서 인상파를
예고하였습니다.
그밖에 "우유 짜는 여인" "저녁기도" "실 잣는
여인"
"괭이 가진 남자""
젊은 어머니와 아기" 등이
있고,
소묘와 판화 등의 작품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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