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 1452 - 1519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에서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피에르 다 빈치(Ser Piero da Vinci)
와 가난한 농부의 딸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르네상스의 만능인으로 어릴 때부터 수학·음악·회화 외에
모든 학문에 있어서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1472년 피렌체 화가 조합에 등록하여 한 사람의 화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 빈치는 화가로서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로서
오늘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최후의만찬을 그렸고
1503년에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1506년 밀라노에서 프랑스 왕의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
1519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가 그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또한 다빈치는 파동 운동 이론, 연통관 내의 압력, 유체에 미치는
압력의 발견자이기도 하다.
그 응용면에 있어서 양수기와 수압의 발견자였다.
새의 나는 방법에 대한 연구로 비행기의 원리를 생각하고
또 연구 노트에는 낙하산.헬리콥터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예술과 과학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밝힌 천재였다.
모나리자 (Mona Lisa) (1510)
모나리자(Mona Lisa) 또는 라 조콘다(La Gioconda, La Joconde)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초상화로,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나"(mona)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경칭이고,
"리자"(Lisa)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이다.
즉, 한국어로 하면 "리자 여사"라는 뜻이 된다.
이 작품은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는 여인을 그린 초상으로,
엷은 안개가 덮인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이 그림에는 황금비율인 1:1.618의 비율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있다.
코와 눈썹의 길이와, 턱과 코의 길이의 비율, 인중과 입술의 길이와
입술과 턱의 길이의 비율,얼굴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 등
황금비율이 많이 들어가 균형잡힌 느낌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02년에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미완성작으로 남겨둔지 4년이 지난 후에서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델이 누군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른 이론인, 그림의 주제는 레오나르도의 어머니라는 설도있다
모나리자 그림에는 눈썹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것에 대해서는 눈썹을 뽑는 것이 당시 미의 기준이었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모델도 눈썹이 없는 상태였다는 주장과
모나리자 작품이 눈썹을 그리지 않은 미완성작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나리자>는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가장 위대한 회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모나리자는 1530년 프랑스 왕실의 소장품으로 입궁하게 된다.
그 후, 1789년 프랑스 혁명 때까지 약 260여년 간을 프랑스 왕실에 있다가
혁명후 루브르 궁전이 박물관으로 바뀌면서 최초로
시민들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모나리자는
다시 황제의 소장품이 되었다가 그후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토록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회화가
잘 보존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오늘날 모나리자는 개인 경호원과 공기 정화 시스템, 3중 방탄 유리로
보호된 콘크리트 박스 속에서 안전하게 모셔져 있다고 한다.
마돈나 리타 (1491년)
.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의 주제는 12세기말부터 되풀이하여 그려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아기 예수가 왼손에 갖고 있는 작은 새로서
그것은 '영원'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노아의 성모(1478년)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흰 꽃은 애정의 교류물로서 소녀와 같은 성모와,
그의 동생과 같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기 예수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커서 성모의 얼굴과 별로 다를 바 없을 정도이나.
두 사람은 성모자 이기보다는 남매와 같은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 같다.
聖 요한 (1516년)
성(聖)안나와 성모자(聖母子)와 어린 양 (1519년)
카네이션의마돈나(1480)
그리스도의 세례 (1473년)
이 그림은 1473년에 그린 것이라 추정되는데 신약성서 마태 복음
제3장 13절부터 17절까지 기록된 그리스도 세례의 장면이지만,
천사가 곁에 그려져 있고 더욱이 등을 보이며 머리를
옆으로 묘사하는 수법은 레오나르도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손에 들고 있는 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와 천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몸의 움직임과 더불어 가운데 세례 장면을 강조하려는 배려가 보인다.
이들은 조형적인 의미이지만 풍경도 요단 강의 연장이고,
물 또한 정화(淨化)의 상징이며,
암벽의 돌은 신의 존재를 지칭하고 있다고 하겠다
지네브라 벤치의 초상 (1476년)
그림의 뒤에는 종려와 월계수, 그리고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아름다움은 덕을 장식한다.]라는 글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지네브라가 덕을 갖추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암굴의 성모 (1504년)
레오나르도의 완성된 최초의 대작인 이작품을 완성한 것은 성모 마리아의 날이었다.
물기를 먹고 있는 암굴 속에서 청록색의 옷을 입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풀 위에 앉아 있는 아기예수에게 요한을 인사시키고 있다.
원래 이 그림은 밀라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던 것이
1506년 이전에 팔려 1842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마돈나 리타(1499년)
음악가의 초상1490년)
자화상(自畵像)
세실리아 엘미니의 초상(1490년)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초상화로 손꼽히는 <Lady with an Ermine>은
다빈치가 밀라노에 머물던 시절 대공이었던 '루드비코 스포르차'의
애첩을 그린 그림이다.
여인이 손에 안고 있는 담비는 대공이었던 스포르차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였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 (1498년)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서는 가장 잘 알려진 그림중하나이다.
원래 이 테마는 수도원의 식당에 그려지는 수가 많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서 그려졌다.
군인들에게 연행되기 전 마지막으로 12명의 제자들과 만찬을 가진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최후의 만찬'은
1491년부터 1498년까지 무려 7년간의 기간동안 그려졌으며
현재 이태리의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 그려져 있다.
수태고지(受胎告知 (1475)
자화상(自畵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