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
바티칸 비밀주의로 악보 원본 유실
클래식 전체를 통틀어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처럼 명성이 ‘경제적인’ 작곡가도 드물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로마에서 태어나 훗날 교황청 음악악장이 된 그는 오로지 단 한 작품으로 인하여 자신의 이름을 고전음악계에 불멸로 등록했다. 다름아닌 ‘미제레레 메이’(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카톨릭계에서 이 음악은 교황청 시스틴 성당에서 행해지는 성 금요일날 저녁예배에 불린다. ‘테네브레’라는 이름의 이 예배는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다가 ‘미제레레 메이’의 신비로운 합창 속에 마지막 촛불이 꺼지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마무리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가사를 시편 51에서 발췌했다는 점이다. 한 점 얼룩없는 천상의 음악이 정작 담고 있는 줄거리는 다윗이 바세바와 통정한 뒤 참회하는 속세의 죄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는 수도사 윌리엄이 바로 그런 이유로 교황청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이 합창이 유명해진 이유는 교황청이 이 음악의 악보를 봉인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폐쇄적이었던 교황청은 이 음악의 악보가 외부에 공개된다든가 시스틴 성당 바깥에서 연주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악보가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인 1770년까지 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는 바티칸까지 일부러 찾아와야만 했다. 이러한 칙령으로 인해 수많은 거장들이 시스틴 성당에 몰려들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었던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이 경험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를 언급하고 있다.
신동 모차르트도 ‘미제레레 메이’와 관련해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과시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열네 살의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시스틴 성당에서 10분간에 걸쳐 진행되는 이 음악을 들은 모차르트는 단 두 번만에 바로 이 곡을 암기해 악보로 옮겨 적었다. 훗날 모차르트는 이 작품에 크게 영향을 받은 자신의 ‘미제레레 작품번호 85’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 어느 세상이든 완벽한 통제란 없는 법. 1770년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는 바티칸의 다른 악보들과 함께 마침내 영국 음악학자 찰스 버니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이 악보의 사보는 흔하게 떠돌고 있었다. 대부분 암보에 의한 것이어서 성부라든가 멜로디에 차이가 있는데 사보가 더 흔하게 돌다 보니 결국 정통 작곡가에 의한 최초의 버전은 유실되고 말았다. 바티칸의 비밀주의가 낳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2005. 6. 20.
글 출처 : 인터넷 한겨레
후기 르네상스 음악의 적막함 :: Allegri - Miserere |
사순절(Lent)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속의 절기로, 재를 이마에 바르며 죄를 회개하는 <재의 수요일>에서 부활주일 전의 <성토요일>까지의 40일을 말한다. 이 40일은 신약성서에서 예수께서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던 기간에서 유래하며 이 기간내의 일요일은 40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순절을 Lent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만물의 소생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요한 3:16)을 의미하는 것이다.
Miserere는 사순절 기간 중 마지막 주인 성주간(Holy Week)동안의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아침미사에 사용하기 위해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가 작곡한 아카펠라(a cappella) 곡으로 구약성서 시편 51편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곡 시기는 교황 우르반 8세가 제위했던 163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미제레레>는 각각 4명과 5명으로 구성된 두 성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 성부가 노래하면 공간적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른 성부가 이에 화답하는 노래를 부르는 형식이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과거 카톨릭에서 이런 미사곡은 악보를 유출하거나 다른 곳에서 연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이를 어기면 파문을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여기에 소개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에는 모차르트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4살의 모차르트는 그 천재적 재능으로 인해 교황을 초청을 받아 바티칸을 방문한다. 이 방문 후, 모차르트는 미사 도중 들었던 기억력에만 의존해 악보의 일부를 기록해두었고, 이는 여행 중에 만난 영국의 역사가 찰스 버니(Dr. Charles Burney)에 건네지고 결국 1771년 런던에서 출판된다.
악보 유출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미제레레를 공개했다는 혐의를 받고 모차르트는 교황에 의해 소환된다. 결국 악보를 유출한 것이 아닌, 곡을 한번 듣고, 그 모든 음을 암보했던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빚어낸 에피소드라는 것을 깨닫고 교황은 모차르트를 파문하는 것이 아닌 그 음악적 재능을 칭송했다는 것이다.
찰스 버니가 출간한 악보에는 꾸밈부(ornamentation)가 없는 것이었다. 이 꾸밈부는 특정 곡 자체와 관계없이 선행하는 르네상스적인 음악기법으로 교황청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었다. 이렇게 교회에 의해 음악 기법이 관리되는 이유는, 중세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회음악은 미사의 일부였다는 사실때문이다. 결국 1840년 수도사 피에트로 알피에리(Pietro Alfieri)가 시스티나 성당의 미사곡을 보존하기 위한 작업의 결과로 꾸밈부를 비롯한 완전한 형태의 악보가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알레그리가 작곡한 원곡이 아닌 알레그리의 곡에 토마소 바이(Tommaso Bai)가 추가한 형태의 것이다.
오늘날 연주되는 대부분의 미제레레는 알피에리 원본 악보가 아닌 지휘자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윤색된 20세기 판의 악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미제레레 음반은 데이비드 윌콕 경(Sir David Willcocks)이 지휘한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의 1963년 판이 가장 유명하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Gimell에서 출반된 The Tallis Scholars 의 연주에 더 깊은 방점을 두고 싶다.
Miserere mei Deus (Psalm 51), motet for chorus
Common Name: Miserere Mei Deus Psalm 51 For Chorus Composer: Gregorio Allegri (1582 - 1652)
Conductor: Peter Phillips Ensemble: The Tallis Scholars Performer: Alison Stamp (treble solo), Jane Armstrong, Michael Chance and Julian Walker. Instrument: Soprano, Countertenor, Soprano, Bass
Genre: Baroque Period / Motet / Psalm Date Written: 17th Century Period: Baroque Country: Italy
Mono/Stereo: Stereo SPAR Code: AAD (A-D) Studio/Live: Studio Venue: Merton College Chapel, Oxford, Oxford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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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음악의 작곡시기는 바로크 시기로 분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곡자가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한 로마파(Roman School) 작곡가라는 점에서 바로크 이전의 후기 르네상스 음악으로 분류되며, 현대에 연주되는 르네상스 음악 중 가장 지명도가 높은 곡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흔히 바로크(Baroque)하면, 음악에서 바흐, 비발디, 텔레만 등의 작곡가와 조용하며 정적인 음악을, 건축에서는 단정함과 호화로움이 적절히 조율된 건축물을 흔히 상상한다. 그런데, Baroque는 부정적인 의미로 <지나치게 장식된것, 기괴한 것>이라는 사전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바로크는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의 맥락을 이해해야만 온전한 뜻이 드러난다. 즉, 베르사이유 궁전등의 바로크적 건축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중세가 끝나고 왕권신수설에 근거하는 근세의 절대왕권이 확립되면서 지배자로써의 왕의 절대적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화려함과 요란한 치장을 동반한 예술과 생활 양태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당시의 상황이 일반인에게 있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기괴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로 이에 대한 거부감이 <바로크>라고 일컫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의 <문명화과정(The Civilizing Process)>에는 이렇게 사회변동과 인성구조의 변화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아침에 일어나, 비발디의 음악을 틀어놓으면 조용한 아침 시간의 고즈넉함이 고조되며, 더 우아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바로크 음악. 그런데, 맙소사!!!
막 중세를 탈출한 근세인들에게 저토록 혼잡스러울 정도의 기괴함을 의미했던 바로크 예술이 오늘날에 와서는 고고한 아름다움이 있는 적막함, 심하게 이야기하면 졸릴 정도로 지루함을 상징하고 있음은 웬말인가?
전체 시스템 복잡도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개별 개체의 속도 상승을 필요로 한다는 시스템 구성이론을 동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단조로움과 느림이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한 복잡함과 빠름 역시 동일 항목으로 묶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명이란 이름 아래 우리 시간과 수입의 상당부분을 더 빨라지는 것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의 복잡도가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효율성>에 대한 과도한 현대적 맹신, 패스트 푸드, 시간 절약을 위한 무수한 일회용 용기, 더 빠른 자동차, 더 빠른 컴퓨터... 이런 것들만을 보자면 우리는 우리의 최종목표가 더 온전하고 고결한 인간성이 아닌, 마치 번개불처럼 빨라지는 것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여기에 소개한 음악을 들었던 중세인들이 극도의 부정적 혼잡한 느낌을 갖게 했던 바로크가 오늘날 단조로움과 적막한 의미를 갖게 했다면, 대체 빠른 것이 지고의 가치를 지니는 우리의 삶은 대체 얼마나 더 복잡해져있단 말인가? 그리고 악기의 반주가 전혀 없으며, 비교적 소수의 남성들의 목소리로만 연주되는 아카펠라임에도 불구하고, 8관 구성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처럼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농밀하게 들어찬 음악을 들으면서 시대적 변천을 유추해 보노라면, 우리는 삶의 적막함과 단조로움의 미덕을 잃어버린 쓸쓸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과거의 바로크적 의미를 충분히 뒤집어 버릴만큼의 큰 위력을 갖고 있는 현대적 삶의 빠름과 복잡함은 앞으로 얼마나 정도를 더할 것이며, 또 그 지향점은 과연 어디인가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는 그 유명세로 인하여, 오늘날 성주간(Holy Week)에 바티칸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수요일과 금요일 아침 미사에 이 곡이 연주되지 않으면 많은 실망을 한다고 한다. 중국인 특유의 과도한 허풍과 짜증나는 인조적 감정 제조로 특징지워지는 홍콩 느와르 영화를 만드는 오우삼 감독이 헐리우드에 진출해 니콜라스 케이지를 출연시켜 첫번째로 만든 Face off 의 장례식 장면에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영화음악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장면과 음악의 품격이 어울리지 않음으로 인해 약간의 분노(?)와 더불어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만을 남게 했지만... 악보는 (이곳)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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