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무엇인가를 이 세상에 남기고 가고 싶어 합니다.
대단한 인물도 아니면서 자기의 무덤이니 비석을 크게 만들고 싶어 하는데,
나 죽은 뒤에 나의 무덤이, 나의 비석이, 그 자리에 없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일단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돌아와 자기 무덤을 둘러보고
그 비석의 비문을 대강이라도 한번 읽어 본 사람은 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돈을 남기고 가겠습니까?
상속세로 뜯기지 않기 위해 신사임당이 그려진 빳빳한 현찰로 바꾸어 은행에도 가져가지 않고
그 돈을 창고에 꽉 채우고 아들·딸에게 현찰로 나눠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여럿 있답니다.
그래서 5만 원권의 60%는 유통되지 않고 사장된 채 ‘그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답니다.
아들·딸에게 그 돈을 물려주기도 전에 부모가 치매에 걸려 그 돈을 어디다 감추어 두었는지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먼 후일’ 어떤 가난뱅이가 횡재하는 수도 있겠지만 세무당국이 가만있지는않을 것 같습니다.
쓰지 못할 돈, 쓸 수도 없는 돈이 많으면 뭘 합니까?
돈은 쓸 수 있어야 돈이죠.
Bach나 Beethoven 같은 음악가가 되어 음악을 후세에 남겨줄 수 있습니다.
Goth나 Picasso 같은 화가가 되어 명작을 후세에 남길 수는 있습니다.
Dante나 Milton처럼 명시(名詩)를 남기고 갈 수도 있습니다.
Adam Smith나Karl Marx처럼 명저(名著)를 남길 수도 있고
Abraham Lincoln이나 Nelson Mandela처럼 정치적 위업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곡가가 되고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학자, 대정치가도 특별한 DNA를 타고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참새가 황새처럼 걸으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도무지 26년만 살고 피곤하고 병들어 세상을 떠난 영국시인 John Keats가
자기 묘미의 비명(碑銘)을 이렇게 적었답니다.
Here lies the whose name was writen in water.
(Epitaph for himself)
자기 이름을 물 위에 적은 한 사나이 여기 누워있다.(자신의 묘비명)
우리가 남기고 갈 수 있는 것은 거짓 없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이웃을 사랑하려고 힘쓰는 그런 평범한 삶밖에는 남기고 갈 것이 없지 않습니까?
- 김동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