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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희망을 꿈꾸며 살고 있다면 늙은이들은 죽음을 꿈꾸며 살고 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매장을 할 것인가?
기증 서약을 한 장기는 그대로 실행할 것인가?
없는 것으로 문서를 찢어 버릴 것인가?
만일 오랫동안 몸이 불편하면 요양원에 갈 것인가?
아니면 집에서 그대로 간병인두고 살 것인가?
문득문득 살아 있는 육신을 두고 그런 꿈을 꾸며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미래를 계획한다.
인도 여행을 하면 갠지스 강 변이나 바라나시의 허름한 천막 밑에서 피골이 상접한 노인들이
서성거리는 모습을 볼수 있다.
죽은 후의 환생을 꿈꾸며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을 보면 죽음에 대한 환상은 더 절실해진다.
길거리에서 벌거벗은 채 죽어가고 있는 이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가 죽으면 화장할
나무 값을 은밀한 곳에 감추어 두고 죽음을 기다리는 예비 망자들.
우리가 볼 때 그들은 죽음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다.
우리는 조금 다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우리의 정서가 아니던가?
그래서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가고 싶어 선한 일도 하고 유명해지려는 본성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유명해지고 살다간 흔적이 있다고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청소년 시절에는 희망이라는 꿈을 갖고 살아야 하며
늙어 흙으로 돌아갈 때쯤 되면 잘 살았다고 스스로 만족하며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마음의 평안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
삶과 죽음 이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