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으로 잡힌 두 용의자를 상상해보자.
둘 다 끝까지 침묵을 지키면 범인을 찾지 못해 1년 징역을 살게 된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 상대방에게 죄를 씌우면 본인은 무죄로 풀려나고, 상대방은 4년 징역을 살게 된다.
그런데 만약 둘 다 상대방에게 죄를 씌운다면 각자 3년 징역형을 받는다.
범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선 계산을 해보자.
(1) 둘 다 침묵을 지키면 합쳐 총 2년(1+1) 징역을 받지만,
(2) 한 명이 배신하면 총 4년(0+4),
(3) 둘이 서로를 배신하면 총 6년(3+3)형을 받게 된다.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총행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공리주의를 믿는다면 당연히 (1)이 정답이다.
하지만 인간은 논리적이지도, 공리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언제나 나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상대방도 우리만큼 착하고 현명할까? 나는 침묵을 지키겠지만 상대방이 나를 배신한다면?
의리를 지킨 나는 4년 감옥살이를 해야 하지만 상대방은 자유인이 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나를 배신할 사람을 먼저 배신하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어일 뿐이다.
결국 배신이 두려워 모두가 모두를 배신하는 사회.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언제나 가장 비효율적 방법을 선택하는 사회.
게임 이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공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기와 식량과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우선 무기를 포기하고, 그걸로도 부족하면 식량을 포기하라 했다.
하지만 신뢰만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신뢰가 사라지는 순간 지켜야 할 공동체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 노조와 경영인. 기성세대와 신세대.
어쩌면 우리는 모두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먼저 배신해야 한다고 믿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버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