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말할 때 공자의 논어 위정(爲政) 4장을 보면
15세는 학문에 뜻을 둔다 하여 지학(志學),
20세는 비교적 젊은 나이라 하여 약관(弱冠),
30세는 뜻을 세우는 나이라 하여 이립(而立),
40세는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 하여 불혹(不惑),
50세는 하늘의 뜻을 안다 하여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한다 하여 이순(耳順)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70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70은 흔히 고희(古稀)라고 부르는데
이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정에서 돌아와 하루하루 춘의를 잡혀[朝回日日典春衣],
매일 강두에서 취하여 돌아오네[每日江頭盡醉歸].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酒債尋常行處有],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
그러나 논어에서는70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 하여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한다.
이를 줄여 나이 70은 종심(從心)이라고 부른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때 채나라 국경을 지나다 뽕을 따는 두 여인을 보았는데,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예뻤고, 서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곰보처럼 얽었다.
공자가 농을 하기를 "동지박 서지박(東枝璞 西枝縛)"이로고....
동쪽 가지는 구슬박이고 서쪽 가지는 얽을 박이라.
서쪽 여인이 공자를 힐끗 보더니 이렇게 대꾸한다.
"건순노치 칠일절양지상 이백어면 천하명문지상"
(乾脣露齒 七日絶糧之相 耳白於面 天下名文之相)
"입술이 바짝 마르고 이빨이 톡 튀어나온 게 7일간 굶은 상인데,
귀가 얼굴색보다 흰걸 보니 문장만은 천하에 알려질만 하겠군."
공자의 인물면면을 자세히도 몽타주한 최초 인물일지도 모른다,
무안을 당한 공자가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乾脣露齒 七日絶糧之相' 때문에 채나라 국경에서 포졸에게 잡힌다.
천하의 석학 공자를 몰라보는 포졸이 묘한 숙제를 던지는데,
당신이 노나라 성현 공자라면 보통사람과 다른 비범함이 있을터,
구멍이 9개 뚤린 구슬들을 명주실로 한번에 꿰어보라고 한다.
공자가 명주실을 잡고 구슬을 꿰는데 연 나흘을 끙끙댔지만 실패의 연속이라,
할 수없이 자신을 '건순노치 칠일절양지상'이라 했던 여인에게 제자를 보낸다.
제자가 가보니 여인은 간데없고 짚신만이 거꾸로 뽕나무에 걸려있었던 바,
소식을 접한 공자가 무릎을 탁 치며 제자에게 이르되
"계혜촌(繫鞋)을 찾아가 보아라"라고 한다.
제자가 우여곡절 끝에 계혜촌에서 그 여인을 찾아 구슬꿰는 가르침을 청하자
여인은 말없이 양피지에 글자를 적어준다.
'밀의사(蜜蟻絲)'....
글귀를 받은 공자가 탄복하며 꿀과 실과 개미 한 마리를 잡아오게 하여,
개미 뒷다리에 명주실을 묶어 놓고 구슬구멍에 꿀을 발라 뒀더니,
하룻밤 새 개미가 구슬을 다 꿰어 놓았는지라.
그날은 공자가 밥 한 끼 못 먹고 굶은 지 바로 칠일째 되는 날이었더라.
옥문을 나서는 공자가 혼자 말을 중얼거린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인 것을...."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참 지식에 통달되도다.
자신의 오만방자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친 공자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진다.
왜? 구멍이 다섯도 일곱도 아닌, 아홉 개 뚤린 구슬을 나에게 주었을까?
공자는 70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이치를 깨달았다는데,
인생이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 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향내를 감지하고,
입으로는 정갈하게 먹고 진실되게 말하며, 두 구멍으로는 배설하는데 막힘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가는 기본이요,
하늘의 도리(道理)가 아닐까 하는...
즉,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천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나이 70에 그 이치를 비로소 통달하니, 이후 공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하여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