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prev 2024. 11 next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집시의 기도 / 장 금 (1949 ~ 2009)

-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시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의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 돼"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공지 기타 컴퓨터로 TV보기 (지상파 및 종편)
공지 기타 신문 잡지 보기
3865 자유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짐이 부족한 마음들
3864 자유글 인생의 고수와 하수
3863 자유글 인생은 연주하는 음악처럼
3862 지식 사후 세계 - 천국, 지옥은 존재하는가?
3861 자유글 삶의 오르막길 내리막길
3860 자유글 마음은 쉽게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3859 자유글 다시 일어서는 힘
3858 자유글 참을 인(忍)자의 비밀
3857 자유글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
3856 유머 어느 산골의 외상값
3855 유머 들어도 기분 나쁜 칭찬
3854 자유글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3853 자유글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소
3852 자유글 인생의 작은 교훈
3851 자유글 삶은 영원한 물음표
3850 자유글 불행은 넘침에 있습니다
3849 자유글 우리들 인생은 이렇다네
3848 자유글 오로지 입을 지키십시오
3847 자유글 100점짜리 인생을 사는 방법
» 자유글 집시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