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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호랑이 가죽처럼 값비싼 물질보다 세상에 남기는 명예를 더 소중히 합니다.
그런데 이름은커녕 글자 하나 남기지 않은 비석으로 무엇보다 훌륭한 명예를 남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문에 아무 글자도 쓰지 않은 비석을 '백비(白碑)'라고 합니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조선 시대 청백리로 이름난 아곡 박수량의 백비가 있습니다.
그는 전라도 관찰사 등 높은 관직들을 역임했지만 어찌나 청렴했든지 돌아가신 후에
그의 상여를 메고 고향에도 가지 못할 만큼 청렴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에 명종이 크게 감동하여 암석을 골라 하사하면서
'박수량의 청백을 알면서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가 청백했던 생활상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명하여
'백비(白碑)'가 세워졌다 합니다.
이는 돌에 새길 비문 대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박수량의 뜻을 깊이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엔 탐욕스럽게 허명에 사로잡혀 명예만 좇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한 명예는 자신이 잡아 자신의 안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