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때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관명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왔습니다.
숙종이 여러 고을의 민폐가 없는지 묻자
곧은 성품을 지닌 이관명은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있는데, 무슨 일인지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 관리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면서 책상을 내리쳤습니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
갑자기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아뢰었습니다.
"신은 어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지나친 행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 하나 전하의 거친 행동을 막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하여 이제껏 전하에게 직언하지 못한 대신들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주십시오."
숙종은 여러 신하 앞에서 창피를 당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곧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라고 명하였습니다.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였습니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숙종의 분부에 승지는 깜짝 놀라면서 교지를 써내려갔습니다.
주위에 함께 있던 신하들도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숙종이 다시 명했습니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승지만이 아니었습니다.
신하들은 저마다 웅성거렸습니다.
또다시 숙종은 승지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를 제수한다."
숙종은 이관명을 불러들여 말했습니다.
"경의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소.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으로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권력 앞에서 그릇된 것을 그릇되다 말하는 용기도 훌륭하지만
충직한 신하를 알아보는 숙종 임금의 안목도 훌륭합니다.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회...
현자를 알아보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이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는 세상 아닐까요?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