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분명 서러운 일이다.
하지만 늙어도 손끝에 일이 있으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쥐고 있던 일거리를 놓고 뒷방 구석으로 쓸쓸하게 밀려나는 현상을 ‘은퇴’라는 고급스런 낱말로 포장하지만,
뒤집어 보면 처절한 고독과 단절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은퇴는 더 서러운 것이다.
'방콕'이란 단어가 은퇴자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그들을 '화백'(화려한 백수), '불백'(불쌍한 백수), '마포불백'(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등으로
나누고 있다.
'화백'이든 '불백'이든 간에 마음 밑바닥으로 흐르는 깊은 강의 원류는 ‘눈물 나도록 외롭다’는 사실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화백'도 골프 가방을 메고 나설 때 화려할 뿐이지 집으로 돌아오면 심적 공황 상태인 '방콕'을 면치 못한다.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지속적인 노동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제 진 태양은 오늘 다시 떠오르지만 은퇴자들은 어제도, 오늘도 갈 곳이 없다.
이럴 때마다 다산(茶山) 선생의 '독립'이란 시를 기억하며 혼자 웃는다.
'대지팡이 짚고 절간에나 노닐까 생각다가
그냥 두고 작은 배로 낙시터나 가볼까 생각하네
아무리 생각해도 몸은 이미 늙었는데
작은 등불만 예정대로 책 더미에 비추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방콕'이 독락(獨樂)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나 책을 둘이 나란히 앉아서 본다고 두 사람이 함께 보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내 것을 보고 너는 네 것을 볼 뿐이다.
그래서 생애도 혼자, 죽음도 홀로 맞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모두 홀로다.
암수가 따로 없는 태양이 그렇고, Only one이란 고독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 가를 알게 해준다.
경주 안강의 자옥산 기슭으로 낙향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도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인고의 7년 세월을 외로움과 함께 버텨냈다.
사무치도록 외로웠기 때문에 담을 헐어낸 자리에 살창을 끼워 계곡의 물소리를 눈으로 들으면서 세월을 보냈다.
조선 초기의 학자 권근(權近)의 '독락당기(獨樂堂記)'를 보면 홀로의 즐거움이 일목요연하다.
'봄 꽃과 가을 달을 보면 즐길만한 것이지만
꽃과 달이 나와 함께 즐겨주지 않네.
눈 덮힌 소나무와 반가운 빗소리도 나와 함께 즐기지 못하니
독락(獨樂)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글과 시도 혼자 보는 것이며 술도 혼자 마시는 것이어서 독락(獨樂)이네...'
옛 선비들의 독락(獨樂)에는 다분히 풍류적인 즐거움이 서려 있지만,
오늘의 백수들이 곧잘 읊조리는 '방콕'에는 궁상과 자탄이 한숨처럼 배어 있다.
원래 강산과 풍월(風月 ;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어깨 너머로 배운 짧은 지식)은 주인이 없고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이라고 했다.
홀로 독락(獨樂)을 못 즐길 양이면 풍월(風月)의 주인이라도 될 일이다.
풍월(風月) 주인은 정년도 없고 은퇴도 없다.
'문밖 나서니 갈 곳이 없네' 란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