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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가장 존경받는 대학자 퇴계 이황에게는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가 된

둘째 며느리 류 씨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결혼 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던 터라,

이황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갈 며느리가 걱정스러웠지만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는 유교적 규범에 얽매여 남은 인생을 쓸쓸히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집안을 돌아보던 이황은 며느리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란도란 분명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였습니다.

순간 이황은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방안을 살펴보니  며느리는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인형 앞에 술상을 차려 놓고는 그 인형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여보, 한 잔 드세요."

그리고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던 이황은 평생 한 지아비만 섬겨야 한다는 조선의 법을 어기고

며느리를 재혼시켜주고자 며느리 류 씨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귀가가 늦어진다는 억지 트집을 잡아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쫓겨난 며느리 류 씨는 친정으로 가는 도중 자결을 하려다 친정아버지에게 건네라는

시아버지의 서찰이 생각나서 읽어 보게 되었고 서찰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이것을 전하면 친정에서 너를 재가시켜 줄 것이다.

행복을 바란다'는 내용으로 며느리의 장래를 위해 걱정하는

시아버지의 간절한 사랑과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러 해가 흐른 뒤,

어느 날 이황은 한양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상도 아침상도 모두 이황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식사가 차려졌고,

간이 입에 아주 딱 맞아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 떠날 준비를 하는 이황에게 

집주인은 한양 가는 길에 신으라며 잘 만들어진 버선 두 켤레를 건네어서 신어보니

이황의 발에 꼭 맞았습니다.

 

이황은 그제야 둘째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잘 정돈된 집안과 주인의 사람됨을 보니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황은 며느리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재가해서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며 행복한 마음에 길을 떠났고,

며느리 류 씨는 떠나는 시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더욱더 어두운 곳에서 그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뭉쳐 있는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으면 그것들은 한이 되고 아픔이 됩니다.

시아버지의 배려 깊은 사랑은 며느리에게 남아있던 응어리진 한과 슬픔을

눈 녹듯이 녹아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슬프고, 괴로워도 자기를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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