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우리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우리의 마음이 담깁니다.
굳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던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는 말이지요.
그래서 인디언들은 자식들을 가르치며 상대와 이야기를 할 때는
말이 아니라 말투를 들으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단순히 오가는 말이 아니라 말 속에 담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라는 뜻으로 와 닿는데,
참으로 바른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속담 중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있어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 말이 그 말 같아도 말하는 이가 보이는 말의 사소한 차이가 듣는 사람에게는 느낌의 큰 차이로 나타납니다.
말이 주는 느낌과 관련된 속담 중에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요즘이야 영양식으로 콩을 갈아 비지찌개를 끓여 먹을지 몰라도,
원래 비지란 두부를 만들고 난 찌끼를 말합니다.
비지가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끼를 말한다면 당연히 값으로 따지면 비지보다는 두부가 비쌉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묘해서 싼 비지를 사러갔다가도 가겟집 주인의 말이 고맙고 따뜻하면
비지 대신 비싼 두부를 사게 됩니다.
그게 어디 주인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뭘 살지 마음이 바뀌어서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좋은 말을 해주는 주인이 고마워 자기도 뭔가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의 삶속에는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오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 두부 사러 갔다가 비지 사오는 일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비지라도 사오면 다행, 주인의 말에 마음이 상해 아예 발길을 끊는 일도 있는 법이니,
이래저래 우리가 하는 말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셈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말 중에는 “사랑합니다”라든지 “나는 당신이 좋아요”
혹은 “당신이 그립습니다”와 같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말들도 있지만,
설마 그럴까 싶은 의외의 말 속에도 말하는 이의 마음은 담겨 있습니다.
오히려 사소해 보이는 말 속에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이 담길 때가 있습니다.
‘그냥’이라는 말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건 친구에게 “웬일이야, 전화를 다하고?”
마음은 반가우면서도 대답은 시큰둥하게 했을 때,
전화를 건 친구가 “그냥....”이라고 나직하게 대답을 한다면,
전화를 반갑게 받지 못한 내가 금방 미안해질 것입니다.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위해 먼 길을 찾아온 친구에게 “아니, 어떻게 왔어?” 물었을 때,
친구가 밝게 웃으며 “그냥!” 그렇게 대답한다면, 친구의 대답은 아주 짧았지만
마음으로는 와락 친구를 끌어안아주고 싶을 만큼 고맙지 않겠습니까.
‘특별한 이유도 없이’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그냥’이라는 말 속에도
긴 말로 담아낼 수 없는 깊은 마음이 담기는 법,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말은 무엇 하나 따로 없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