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 간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해지면서
새벽녘으론 추위도 느끼게 된다.
한낮의 햇살에는 아직도 따가워 여름의 온기가 남아 있지만,
나뭇잎은 이미 계절의 뜻을 알아차린 듯 하나둘 빛깔을 바꾸고 있다.
푸르던 잎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가며
한닢두닢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계절이란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때가되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삶의 이치가 아니던가,
요즘 나는 가을을 바라보며 문득 나의 늙어감을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늙음이 먼 훗날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인생의 앞보다
뒤를 더 자주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날의 얼굴들이 떠오르고,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오래된 사진 속 젊은 얼굴들에서 흘러간 세월을 읽는다.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가슴에 묻으며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은 조금 쓸쓸하다.
한때 푸르렀던 잎들이 제 빛깔을 다한 뒤
땅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내 삶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낙엽은 결코 실패한 잎이 아니다.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햇살을 받아 자라며,
비바람을 견뎌낸 끝에 저마다의 빛깔로 생을 마무리한다.
사람의 늙어감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젊은 날에는 더 많이 얻으려 애썼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심도,
지나간 일을 붙잡고 후회하는 마음도 조금씩 덜어낸다.
그때의 나 역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고 나면 작은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창가에 비치는 오후의 햇살,
따뜻한 차 한 잔, 오랜 친구의 안부 전화
한 통이 하루를 넉넉하게 채워 준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미루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평온한 하루를 누리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게 된다.
삶이 짧아질수록 하루는 오히려 깊어진다.
나는 이제 늙어가는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다.
주름은 살아온 세월의 흔적으로,
느려진 걸음은 삶을 오래 견뎌 온 시간의 무게로 받아들이고 싶다.
지나온 날의 기쁨과 아픔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품으면서 말이다.
언젠가 나 역시 한 장의 낙엽처럼 조용히 삶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남은 계절을 사랑하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싶다.
가을은 말없이 가르쳐 준다.
아름다움이란 끝까지 붙잡고 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었을 때 담담히 내려놓는 데에도 있다고 …
낙엽이 하나둘 떨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끝을 맞겠지만,
충분히 살아낸 사람의 마음에는 쓸쓸함만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움과 추억, 감사와 용서,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삶의 깊이가 남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늙어감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지나온 세월만큼 깊어지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인생의 가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