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 7. 5. 한 국군 용사의 무덤.
▲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돌아올 깁니다."
▲ 1951. 5. 20. 지게부대.
▲ 1950. 7. 7. 기마대 행렬.
▲ 1951. 4. 3. 강대국이 그어놓은 원한의 38선. 이 38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왔던가.
▲ 1950. 7. 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파병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 1951. 1. 26. 미 폭격기들이 북한군 진지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 1950. 7. 29. 야간 전투 후 주간 취침.
▲ 1950. 12. 9.
중공군의 참전으로 혹한 속에 후퇴하는 유엔군.
▲ 1950. 10. 20. 400여 명의 낙하산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 1950. 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7. 29. 주야간 전투에 지친 국군 병사들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있다.
▲ 1951. 4. 4. 홍성, 수로에 널브러진 유엔군 시신들.
▲ 1951. 7. 10. 적진을 향해 불을 뿜는 155mm 곡사포.
▲ 1951. 6. 3. 155mm 곡사포가 불을 뿜고 있다.
▲ 1951. 7. 3. 유리한 고지를 뺏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 1951. 9. 6. 금수강산을 초토화시킨 포탄 껍질들.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10. 영동, 생포한 북한 측 유격대원들
▲ 1950. 3. 7. 미군이 중공군 포로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 1950. 8. 2. 금강철교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
▲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 1951.1.4 후퇴 피난민 행렬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
▲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모자'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
▲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
▲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
▲ 1950. 8. 13. 박격포 사격 훈련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
▲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
▲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고단한 피난 행렬.
▲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
▲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
▲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
▲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
▲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 1950. 8.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 있다
▲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
▲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
▲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
▲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북한군 시신들
▲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포로들
▲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
▲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2004 NARA
▲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
▲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
▲ 1950. 10. 1. 소공동 일대
▲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
▲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
▲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
▲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
▲ 1948. 5. 8.
다가올 5. 10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들이 선거
방해를 염려하여 죽창을 거둬들이고 있다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