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 Tarantella
in C major, Op.43
사라사테 / 서주와 타란텔라
Pablo de Sarasate, 1844∼1908
Introduction & Tarantella in C major, Op.43 Violin: Sarah Chang / Piano: Charles Abramovic 음원출처: 향기로운 삶의쉼터
Tarantella
Tarantella [타란텔라] 빠른 6/8박자 나폴리 춤곡.
어원은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타란토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과 독거미(이탈리아 남부에 서식) 타란튜라에 물리면 이 춤을 추게 된다는 데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1∼2명의 여자와 1명의 남자가 추는 것이 통례로 되었으며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 제3막과 브르논빌의 《나폴리》 등에도 이 무용이 인용되고 있다. 무곡은 3박자나 6박자계의 아주 빠른 템포이며 장조와 단조가 서로 교대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 중엽, 예술음악으로서 자주 작곡되었으며 특히 리스트, 쇼팽, 베버 등에 의한 예술음악작품은 널리 알려졌다. 최근의 연구에서 타란텔라는 원래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에서의 일종의 검무(劍舞)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Tarantella 남이탈리아 무곡. 6/8박자의 빠른 곡이다.
경쾌하고 바른 스텝과 파트너들 사이의 희롱하는 듯한 행동이 특징적인 춤으로 여성은 탬버린을 들고 추는 경우가 많으며, 두 쌍이 추는 타란텔라도 있다. 명칭은 남이탈리아 도시 타란토에서 유래한다고 전하기도 하고, 유럽 지역에서 발생하는 병인 타란타티(타란튤라라고 하는 독성 거미류에 물려서 걸리는 병)의 치료에 이용하는, 이 병의 이름에서 비롯된 음악의 곡명(타란텔라, tarrantella)에서 유래한다고도 전한다. 19세기 이후 연주회용 작품으로 유행하여 특히 F.F. 쇼팽·F. 리스트의 피아노곡에 많으며 K.M. 베버·J.L.F. 멘델스존은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 이 무곡을 사용하였다.
사라사테의 생애
사라사테는 스페인 북부의 고도(古都) 팜플로나(Pamplona)에서 태어났다. 팜플로나는 옛날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으며, 기독교 3대 순례지의 하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거점도시로 번성해왔다. 산티아고는 스페인 북서부에 있는 소도시로 '성 야곱'이라는 의미인데 9세기 초 이곳에서 예수의 12제자 중의 하나인 성 야곱의 유골이 발견된 곳이라서 이 같은 지명이 붙여지게 되었으며 이 순례의 길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Km나 되는 먼 길로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세기에 걸쳐 이어져 왔다. 이 순례의 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괴테는 '유럽은 산티아고를 순례하면서 생겨났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유럽의 정신사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유럽 각지에서 출발한 순례 행렬이 이곳 팜플로나에서 결기 때문에 예부터 기독교적인 성격이 강한 도시였으며 외래 문화가 유입되는 통로가 되었다.
사라사테는 군악대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음악의 기초를 배우고 8세에는 이미 대중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10살 때에는 팜플로나에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하게 되는데 이를 지켜본 미나 백작부인의 눈에 띠어 장학금을 받고 마드리드 음악원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마드리드 음악원에서의 눈부신 실력향상은 이사벨라 여왕에게도 알려졌는데 여왕으로부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하사 받았으며 12세의 사라사테는 여왕의 특별한 후원과 관심 아래 파리음악원으로 가서 알라르(D. Alard 1815~1888) 아래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다. 알라르는 이태리의 바이올린의 거장 비오티(G. B. Viotti 1755~1824)의 진전을 이어받은 명교사였는데 그의 작품 《화려한 연습곡 Estudio Brillante》은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되고 있다.
사라사테가 1년 만에 1등으로 파리음악원의 바이올린 과정을 졸업한 것을 보면 이미 알라르에게서 별반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사람의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비에니아프스키는 사라사테보다 11살이 많았는데 그가 8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3년 만에 1등으로 졸업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사라사테는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바로 파리음악원을 졸업하지 않고 음악이론을 더 공부한 후 1859년, 15세의 나이로 졸업하였다.
사라사테는 곧바로 유럽에 데뷔하지 않고 북미와 중남미와 아시아 등지를 순회하며 연주경력을 쌓았다. 1876년(32세)에서야 비엔나에서 데뷔하였는데 당시 유럽에는 요아힘과 비에니아프스키와 같은 대가들은 버티고 있었고 1년 후배인 아우어도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나 사라사테의 출현으로 이들은 일시에 빛을 잃는 듯 했다. 사라사테의 출현은 유럽 음악계를 완전히 발칵 뒤집어 놓았다.
'파가니니의 재래'라는 최고의 찬사와 함께 랄로(E. Lalo 1823~1892)는 《바이올린 협주곡 F장조》과 《스페인 교향곡》을, 브루흐(M. Bruch 1838~1920)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d단조》와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생상(C. Saint Saens 1835~1921)은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와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d단조》를 헌정하였다. 이들 작품은 오늘날 바이올린의 대표적인 연주곡으로 꼽히고 있다.
사라사테는 고향을 매우 사랑하여 연주 일정이 없는 때에 고향을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특히 7월 6일부터 1주일간 열리는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in)에 매년 참가했다고 한다. 사라사테가 기차역에 도착하면 시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사라사테는 기차에서 내려서 바이올린을 켜면서 시민들을 축제장으로 이끌었다고 전한다.
팜플로나에 가면 동상과 함께 사라사테 거리가 있다. 사라사테는 연주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한편 작곡에도 힘을 기울여 《지고이네르바이젠 Zigeunerweisen》, 《아라곤의 호타 Jota Aragonesa》, 《8개의 스페인무곡 8 Spanish Dances》, 《서주와 타란텔라 Introduction and Tarantela》, 《카르멘 환상곡 Carmen Fantasy》 등 모두 54곡의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모두 바이올린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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